오늘은 리안이의 8개월 발달검사가 있는 날이다.
조선대학교병원에서 미숙아로 태어나 별도의 케어(?)를 받는 리안이는 일반 아이들처럼 태어난 날로부터 하는 정기검진과 더불어
교정일(태어났어야 하는 날짜)을 기준으로 하는 발달검사를 추가로 받아야 한다.
(일반 아이들의 달 수에 맞춰서 발달검사를 하면 늘 너무 뒤쳐지게 나오기 때문이다.)
집에서 9시쯤 나와 9시 30분 경 조선대학교병원에 도착해서, 먼저 발달검사를 받았다.
발달검사의 진행순서는 부모가 먼저 아이의 상태에 대해 사전 설문을 작성해가면,
발달검사를 하시는 분이 사전 설문을 보시고 아이와 이것 저것 해보면서 할 수 있는것과 아직 할 수 없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시고,
개월수에 맞게 발달이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식이다.
리안이의 검사 결과는 대부분 정상이었다.
아직 네발기기를 못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8개월이 다 차지 않았고, 이 개월 수에는 대부분 잘 못하더라는 위로아닌 위로를 받았다.
(참고로, 스스로 잡고 서기는 리안이가 아직 못하는 항목이었는데, 당장 오늘 집에 돌아와 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위로만을 위한 위로는 아니었던 셈이다.)
그외에 키와 체중은 다행히 주수에 맞춰서 잘 자라고 있었다.
다만 사경이 보여 교정을 하는것이 어떻겠냐고 의사선생님께서 이야기 하셨다.
(교정이라 함은 두상 교정용 헬멧을 쓰는 것을 이야기 한다. 의사선생님의 소견이 있으면, 전문 업체에 의뢰해서 헬멧을 만들어 착용할 수 있다고 한다.)
사실 사경을 처음 발견한것은 4개월 발달검사에서 였다.
리안이는 왼쪽으로만 누워서 자는 버릇이 있어서 한쪽으로만 누워서 자니, 두상이 비틀어진 것이었다.
당시의 시기에는 자세교정만으로도 사경이 완화 될 수 있어서 자세 교정을 권하셨었다.
그래서, 그 후로 옆잠베개를 열심히 썼지만, 크게 교정되지 않았다.
사실 우리가 사경에 대해서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부분도 있었던 것같다.
두상이 비틀어진 것 자체로 의학적인 이상이 발생하지는 않고, 다만, 미용상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이 있었고,
사는데 지장이 없다면, 굳이 힘들게 교정을 할 필요가 있냐는 생각에서 였다.
그렇게 검사를 마치니, 11시가 되었다.
오늘은 사실 검사결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사실상 오늘의 주제)
검사를 기다리다보니, 앞 열에 리안이 또래의 다른 여자 아이가 있었다.
눈이 마주쳐서 살짝 웃어주니, 아이가 방긋방긋 웃어주는 것이었다.
너무 신기해서 웃어주면서 놀다보니, 문득 리안이가 눈에 들어왔다.
리안이는 긴장도가 높아서 밖에 나가면 잘 웃지 않는데, 오늘도 무표정하게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그런 리안이를 바라보고 있자니 앞에 앉은 아이와 대비되면서, 문득 리안이와 놀때, 리안이가 그렇게 방긋방긋 웃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뒤통수를 후려맞은듯 얼얼한 기분이었다.
사실 그랬다. 어느정도 정해진 틀 안에서 리안이를 키우다보니, 스케줄에 쫒겨서 리안이를 끌고 다니기 바빴고,
(스케줄이라함은, 밥을 먹고, 먹고나면 기저귀 갈고, 잠깐 놀다가, 자고, 산책하는 일상의 스케줄을 말한다.)
놀아줄 때에도 의무적으로 책을 읽어주고, 장난감을 쥐어주고는 말았었다.
그 시간들 안의 리안이는 별로 웃고 있지 않았다. 물론 재미있어하고 발을 동동 구르긴 했지만, 앞에 앉은 아이처럼 행복해하는 표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들었다.
처음 리안이가 오고, 화려한 장난감들의 라인업을 보면서, 이렇게 많은 장난감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 시기의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가 옆에서 교감해주는 것이고, 장난감은 그걸 위한 하나의 도구로 써야 맞겠다 생각했었는데,
어느샌가 아이는 내가 아닌 장난감과 교감하게 되었고, 나는 그걸위한 도구로 쓰이고 있었다.
주객전도. 아이가 행복할리가 없었다. 나는 그저 아이를 재미있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주었던 것인데,
사실 리안이는 장난감과 놀고있었고, 나는 그저 장난감과 놀게 도와주고 있기만 한것이었다. (이게 자폐로 가는 길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리안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리안이와 있어서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고 이야기 하고 있었으면서,
정작 리안이가 행복한지, 뭘 좋아하는지는 관심이 하나도 없는 채로, 시간을 보내기 위한 육아, 아이를 재우고 놀 생각에 바빴던 육아를 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장난감을 다 치웠다. 물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할 때에는 잠깐 장난감과 있어야 했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리안이와 눈을 맞추고, 쭉쭉이도 해주고, 배도 만져주고, 스킨십도 하면서 같이 놀아주었다.
이제서야 리안이의 웃음이 오늘 본 그 아이의 웃음처럼 즐거워 보였다. 아빠와 함께 해서 즐거운 웃음.
내가 행동하고, 리안이가 반응하고. 이제서야 제대로 된 아빠와 딸이 된 것같았다.
리안이를 재울 때도 평소에는 피곤해할 때까지 장난감으로 로테이션을 돌리다가 지루해하면서 분유를 찾고는 잠이 들었는데,
오늘은 몸으로 놀아주고 눈을 맞춰주니 신나게 웃고, 웃으며 아빠를 만지다가 웃다 지쳐서 잠이 들었다.
피곤하고 지루하게 만들어서 억지로 재우는 것과, 즐겁게 웃다가 즐겁게 잠드는 것은 분명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더이상 장난감의 도구가 되지 않으려 한다.
오늘의 소중한 경험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