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요한 18,37)
오늘은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늘 예수님이 왕이시구나 하고 그렇게 받아들이고 말았었는데, 오늘 말씀을 들으며, 그 사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한번도 본인 스스로 임금 또는 왕이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예수님께서는 왕이 되어버리신걸까요? 예수님께 집요하게 당신이 왕이냐고 묻는 빌라도의 질문에서 힌트를 얻어보았습니다.
아마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긴 자들이 그렇게 고발하였기 때문이겠지요.
수석사제들이 스스로 예수님을 처단할 수 없었기때문에 빌라도를 이용하려했고, 그러다보니 예수님께 반역죄를 덮어씌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거기에 대한 갖가지 증언(예수님께서 왕이다.)을 덧붙였기에, 예수님께서는 빌라도 앞까지 오게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는 한번도 본인 스스로 임금이라고 이야기 하신적이 없지만 수석사제들로부터 고발당하고 십자가형에 처해졌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임금, 왕으로 인정받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진실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를 임금으로 인정하고 있는것은 내가 아니라 너다. 나는 그저 진리를 증언하려 하고 있고, 진리를 증언하고 있는 것 뿐이다.
왜 수석사제들은 예수님을 임금이라고 고발했던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진리를 증언하시는 모습이 수석사제들의 입장에서는 임금노릇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진리를 증언하는 일은 사실 사제직을 맡은 본인들이 해야할 일일텐데, 그것을 더 열심히, 더 잘하는 사람이 나타나버리니, 자신들이 차지해야할 임금 자리를 뺏어가는 것 같이 느껴졌을 것도 같습니다.
보통 임금이나 왕이라고 하면 한 나라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증언하셨을 뿐인데, 왕이 되어버리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증언하신 그 진리는 세상 어떤 것 보다도 고귀한 가치를 지녔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배우고,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이런 진리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보통 세례를 받으면, 사제직, 왕직, 예언직을 받는다고 합니다. 여기에도 왕직이 있습니다. 보통 왕직이라고 하면, "가장 높아지려는 사람은 가장 낮아져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사랑을 전하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오늘 복음에 비추어보면, 왕직이라는 것은 예수님처럼 진리를 증언하는 것이기도 한것 같습니다. 조금 생각해보면 이 두 이야기가 서로 상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전한 진리는 사랑입니다.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지, 왜 사랑해야 하는지를 일생동안 이야기 하셨지요. 그런 의미에서 진리의 증언은 결국, 낮은자리에서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사랑을 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전하는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지요.
왕은 사람들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왕직을 받았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진리를 세상속에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왕이 아닌, 하느님 나라의 왕직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보기로 한 번 더 다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