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10. 연중 제 32주일(평신도주일)

2024. 11. 15. 00:03끄적끄적/말씀 새기기

평신도 주일을 맞아 우연히도 강론대에 서게 되었다.
강론을 일부 편집해서 올린다.

아니 김태희(베르다)님께서 평신도 주일 강론을 하셨다. (링크: https://youtu.be/N8gvhcVuzf0?si=M9D94fBiUcb63WHo)
정말 비교돼서 부끄러워 죽겠다...

세상엔 멋진 사람들이 정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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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다."

평화를 빕니다.
저는 교구 최고의 청년회인 ㅇㅇ 청년회에서 일개 청년을 맡고 있는 ㅇㅇ ㅇㅇㅇ입니다.

먼저 저에게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청년회장님과 신부님 그리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딱 10년 전에 이 자리에 섰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청년회장 대리인 청년부회장이었는데, 오늘은 청년회 최 고령자가 되어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평신도 주일 강론을 제안받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도대체 제가 이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참 여러가지 이야기를 썼다지우기를 반복했습니다.
오늘 제가 나눌 이야기는 오늘 말씀에 비추어 청년 평신도로서 활동을 하며 느꼈던 것들을 청년들을 향한 조언과 신자분들께 드리는 부탁말씀입니다.

오늘 독서를 들으면서 마음에 와닿았던 구절이 있었는데요, 1독서의 <여인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다.> 입니다. 이 구절은 매우 간결한 응답으로 표현되어있지만, 잘 들여다보면 단순하기만 한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1독서에 등장한 이 여인의 모습이 우리 청년들의 모습과 겹쳐 보였습니다.

가뭄으로 더 이상 식량을 구할 길이 없었던 이 과부인 이 여인은 이제 아들과 함께 죽기로 마음을 먹고 마지막 식사를 준비하려고 땔감을 주우러 나온참이었습니다. 그때 엘리야가 나타나서 하는 말이, 나에게 물도 한잔 갖다 주고, 빵도 좀 구워달라고 합니다. 여인이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니, 그럼 내 음식을 먼저 준비해주고 당신들의 식사는 그 다음에 준비하라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채워주실거라는 뒷 이야기가 없었다면 퍽이나 황당하게 들릴법도 한 이야기 입니다. 놀랍게도 여인은 엘리야를 하느님의 사람으로 생각하고 군말없이 그렇게 합니다.

성당 생활을 열심히 하다보면 이 여인 처럼 극단적이진 않더라도 비슷한 상황을 꽤 많이 마주하곤 했습니다. 당장 내 일도 바쁘고 힘들어 죽겠습니다. 공부도 하고, 취업준비도 하고, 갖가지 시험도 봐야하고, 알바도 해야 하는데, 사회생활도 안할 수가 없습니다. 술도 마셔야 하고, 야구도 봐야합니다. 주일이면 쉬고 싶을 법도 한데, 그런 와중에 성당에 나와 봉사를 합니다. 오후 다섯시, 때로는 네시부터 나와서 노래연습도 하고, 때로는 독서, 해설도 합니다. 교리교사를 할 때는 토요일도, 일요일도 성당에서 지냈습니다.

1독서의 밀가루 한 줌과 병에 든 기름 조금이 바닥난 체력과 여유없이 바쁜 마음 같고, 마지막을 준비하는 여인의 마음은 이제 그만할까 고민 하는 제 마음 같았습니다.

이런 마음은 비단 저만 느낀 것은 아닐것입니다. 이자리에 있는 우리 청년들 모두가 여전히 이와 같은 상황에서 활동하고 있고, 한번쯤은 아, 쉬고싶다. 성당만 안가도 참 여유로울텐데… 하는 마음을 느껴보았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이 청년들은 아직까지 이 자리에 남아있습니다. 그들에게 밀가루와 기름이 넉넉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것입니다.
15년간 청년회 활동을 하고 육아로 1년간 청년회를 지켜봐온 저의 입장에서 쭉 돌이켜보면, 성당에  오래도록 남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 중에는 여유롭게 미사참례만 하고 돌아가는 청년들 보다는 늘 고생하며 묵묵히 봉사하는 청년들이 더 많았습니다. 왤까요?
하느님께서 밀가루 단지를 비지 않게 하시고, 기름병을 마르지 않게 하신다는 엘리야 예언자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탈진해서 떨어져 나간 청년들도 분명 있었기에, 이 시간 이 자리를 빌어 청년여러분들께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탈진하지 않고, 오래오래 함께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불태우는 만큼 다시 채워져야 합니다. 오늘 독서 말씀으로 미루어보아, 우리가 다시 채워지기 위해서는 한가지 전제가 필요한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평신도 성소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직자와 같이 평신도로서 하느님께서 우리들 또한 필요로 하시고 손수 부르셨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소명’이라는 생활성가에서 <주님께서 나를 부르시어 당신 말씀 내려 주시고, 내가 창조되기 전 부터 나를 뽑아 세우셨네>라는 가사로 잘 표현하고있는 것처럼, 우리는 평신도로서 성소를 받았습니다.
우리 청년들의 봉사가 우리의 의지와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그 의지와 선택은 우리 스스로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가 창조되기 전부터 심어주신 부르심과 말씀이 먼저 있었고 1독서의 여인이 어려윤 상황에서도 엘리야의 말대로 ‘가서 그렇게’ 한 것처럼 우리가 그 부르심에 응답한 결과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부님 수녀님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대단 사람들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독서를 할 때나 해설을 할 때나, 피아노를 연주하고 드럼을 칠 때, 노래할 때, 보편지향기도를 읽을 때나 주보를 나누어드릴 때, 다 같이 한 목소리로 미사에서 기도할 때, 심지어는 성당에서 서로 인사를 할 때에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하느님께서 필요로 하셨기에 하느님의 일을 돕고 있고, 하느님께서 그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 안에 새겨진 하느님의 말씀과 부르심을 더 잘 느낄 수 있고,  우리의 자유로운 의사로 하고 있는 이 모든일들을 더 기쁘고 즐겁게 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청년회가 오래오래 기쁘게 활동하고 성당에서도 늘 사랑받는 단체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올해 태어난 제 딸이 20년 뒤에 여러분의 후배가 될 수있기를 늘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존경하는 교우여러분, 청년회에 많은 관심과 사랑 베풀어주심에 이 자리를 빌어 청년회를 대신해서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인사) 더불어 작은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청년미사에 함께 하시는 것이 좋으시죠? 그렇다면, 여러분 또한 기쁨으로 청년들과 함께 하도록 하느님께 부름 받으신 것이 분명합니다. 여러분들이 좋아하시는 청년미사가 오래오래 지속되기 위해서는 여러분도 하느님께 받은 역할과 소명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1독서에 는 나와있지 않지만, 사실 하느님께서 엘리야를 이 과부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청년들을 위한 엘리야로 부름 받은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와 애정어린 시선으로 청년들을 바라봐 주세요. 그러면 혹시나 바닥을 보이고 있을지도 모를 청년들의 밀가루와 기름단지는 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이 땅에 실현되는 이 간단한 일에 적극 동참해주신다면, 우리 청년들은 더 즐겁고 기쁜 미사로 여러분들께 보답해드릴 것이라 확신합니다.

끝으로 우리 모두가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을 깨닫고 싹틔워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2014년 한국/아시아 청년대회때 교황님께서 직접 알려주신 짧은 기도로 이 자리를 마치고자 합니다.
하느님, 당신께서 제 삶에 바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멘.